3선 국회의원이자 대권 도전 이력을 지닌 원희룡은 이미 공부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입니다. 전국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 사법고시 수석 합격 등 수석 3관왕을 달성했기 때문인데요. ‘제주의 신화’로 불리는 수재 시절의 원희룡, 그리고 원희룡의 정치 성적표 또한 자세히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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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그 학생이 원희룡?
원희룡은 1981년 전국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 중 332점으로 수석을 차지하면서 전국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희룡은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라는 소감을 밝혔는데, 대입 합격자들의 단골 멘트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말을 언론에서 처음 한 사람이 바로 원희룡입니다.
이 멘트에는 비하인드가 있는데, 당시는 5공 당시로 과외 금지 시절이라 교육 당국이 쪽지에 적어준 말을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합니다.
'제주의 신화'가 된 수재 원희룡
원희룡은 1964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농약가게에서 농약병에 인쇄된 상품명을 읽으면서 혼자 한글을 익혔는데, 얼마 후엔 상품 이름과 가격까지 줄줄 외워서 부모님과 손님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원희룡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지독한 가난 탓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신발가게, 농약상, 책방 등을 운영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빚더미에 앉았고, 심지어 어느 날은 칼을 든 빚쟁이가 아버지를 위협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또 운동화가 없어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신고, 쌀 대신 고구마를 썰어 말린 빼데기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녔던 원희룡은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공부를 했다"라고 합니다.
3년 내내 전교 1등! 서울대 수석 합격
원희룡은 제주의 명문고인 제주제일고에 진학했는데, 중문에서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까지 장거리 통학하는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실제로 과외나 학원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제주에선 이미 소문난 수재였습니다.
서울대 수석 입학한 원희룡은 법학과에 진학했는데, 법대 82학번 동기로는 나경원, 조국,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등 수재 중의 수재가 모인 학번으로 유명했습니다. 원희룡은 서울대 입학 후에도 새벽부터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공부에 매진했고, 1학년 1학기 성적이 4.3 만점에 4.13을 받아 모범생임을 증명했습니다. 잠시 운동권 생활에 빠져 공부를 놓기도 했지만, 그 후 딱 1년 사시 공부에 집중해 사법고시 역시 수석 합격했습니다.
서울대 의대생 강윤형 앞에서 무릎 끓은 이유
원희룡의 아내는 서울대 82학번 동기이자 같은 제주 출신인 신경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두 사람은 제주 출신 서울대 신입생 모임에서 만났고, 당시 아내가 마음에 든 원희룡이 자취집 집들이를 핑계 삼아 “삼겹살 구워 먹자”며 아내를 집에 초대한 것이 첫 데이트였습니다. 한번은 친구들과 다 함께 지리산 종주 여행을 했는데, 고지대를 오르는 것이 힘들었던 강윤형이 실신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강윤형은, 원희룡이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람이면 평생 함께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시에 합격한 원희룡이 곧바로 청혼해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후 두 딸을 낳았는데, 큰딸 원소정은 아빠를 닮은 모범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했고, 둘째 원서영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재원입니다.
민주화 운동하다가 보수당으로 갔다고?
원희룡은 검사 3년차 시절, 정치계에는 젊은 피 수혈 붐이 불었습니다. 당시 OB 정치인 느낌이 강했던 이회창 총재에게는 유명한 수재이자 젊은 검사 원희룡이 필요했고, 한때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원희룡은 민주화를 하려면 보수를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총선에 출마했습니다.
2004년 만40세의 나이에 당 지도부 입성한 원희룡은 한나라당 최연소 최고위원을 지내고, 2007년 40대 대권주자로 한나라당 대권후보 출마! 비방선거를 하지 않고, MB-박근혜 양강 구도에 모두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여줘서 ‘페이스 메이커’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서울 양천구에서 제 16,17,18대까지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제주도 지사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원희룡 리스크1. 전두환 세배
2007년 대권 도전 당시, 원희룡이 전두환을 찾아가 세배한 사진은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대 재학 시절, 전두환 집권 반대 데모를 주도한 이력 등을 평소 내세웠던 원희룡이었기에 거센 비판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원희룡은 다른 전직 대통령에게도 찾아가 큰절 세배를 똑같이 했다고 변명하면서도 전두환을 찾아가고 세배한 것이 부적절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원희룡 리스크2. 아내와 딸의 거친 발언
2018년, 원희룡은 제주도지사 후보 자격으로 토론회에 나갔다가 기습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에 분한 원희룡의 딸이 SNS에 ‘칼 들고 복수하러 간다’는 내용이 포함된 격한 표현의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비난이 거세지자, 딸과 원희룡 모두 사과해야 했습니다.
또한 2021년 원희룡이 대선 예비 후보 시절에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아내 강윤형이 상대 후보 이재명을 향해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다’는 멘트를 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의사 윤리에 어긋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이재명 측에서도 공식 사과를 원했지만 원희룡은 아내의 말이 백번 옳다며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원희룡 리스크3. 군 면제사건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토론회 당시, 상대 후보는 “발가락 장애로 군 면제를 받았는데, 어떻게 마라톤을 뛰느냐”면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원희룡이 양말을 벗은 발을 공개한 것이 화제였습니다.
어릴 때, 5일장에서 장사를 하는 아버지의 리어카에 올라탔다가, 발가락이 잘릴 뻔한 사고를 당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발가락 두 개가 뒤틀리는 장애를 가지게 됐다며 자신의 발을 공개해 비난을 잠식시켰습니다. 또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2001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고, 오래 걷기도 힘든 발로 42.195㎞를 수 차례나 완주했습니다.
원희룡이 또! 별명은 ‘원다만’
말 바꾸기는 정치인들의 오랜 나쁜 습관입니다. 원희룡 역시 주장을 하다가 ‘다만’하면서 말을 번복하는 습관 때문에 ‘원다만’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2010년 한 시사지를 통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는데, 당시 기자가 ‘원다만’이라는 별명을 언급하며, 소신을 바꾸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람을 너무 쉽게 단정 짓고 매도하지는 말아 달라!”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는데, 이듬해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무상급식을 찬성하면 당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예상되자 입장을 바꿨습니다.
또 제주도 신규 카지노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바로 다음 달에 국제적 수준의 신규 카지노가 필요하다고 해서 ‘원다만답다’는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 서울양평고속도로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논란이 일자 일방적으로 사업 백지화 결정을 내린 것 또한 2024년 총선 내내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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