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은 4선 의원을 지냈으며 당대표, 문화관광부장관을 역임한 중견 정치인입니다. '김한길 뒤에 최명길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정치 인생에서 아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별명마저 '좋겠다 김한길'이라는 부부의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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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의 남자' 김한길 인생 요약
김한길은 1953년생으로 1981년 소설 <바람과 박제>로 등단, 신문에 ‘여자의 남자’를 연재하며 소설가로 활동했습니다. 1993년부터 MBC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을 진행하며 얼굴을 알렸으며, 1995년 배우 최명길과 결혼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6,17,19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DJ 대선 선대위에서 선거기획을 총괄하는 등 김대중 정부 탄생 공신으로 인정받아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열린 우리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합당과 탈당을 반복하며 ‘정치 철새’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취임 후 대립각을 세우면서 탈당한 뒤 한동안 정계에서 사라졌는데, 폐암 진단을 받고 오랜 투병 생활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2021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의 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정계에 복귀했고, 윤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여배우와 결혼 발표
모든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월드스타 최명길과 인기 작가 김한길의 결혼 소식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최명길씨는 분위기 있는 외모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하는 톱스타이자, 프랑스 낭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무려 9살 연상의 이혼 경력이 있는 소설가 김한길과의 결혼이라니, 파격 그 자체인 스캔들이었습니다. 김한길은 소설가 이어령의 딸 이민아와 1981년 결혼했으나 5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MBC 라디오에서 각각 아침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최명길을 보게 된 김한길이 먼저 마음을 뺏겼고, 영화제 수상을 핑계 삼아 최명길을 자신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대했습니다. 정작 최명길은 당시 김한길의 머리가 하얗다보니 한참 연상인 줄 알고 90도 인사를 열심히 했으며 전혀 남자로서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디오 초대석을 계기로 최명길의 연락처를 알아낸 김한길은 첫 통화에서 자정부터 세 시간을 넘기면서 ‘나한테 시집오는 게 어때요?’라며 프러포즈까지 밀어붙였고, 그렇게 전화 데이트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최명길씨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5년 6월,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출산 보름만에 선거 유세에 나선 최명길
김한길의원이 2001년 재보궐 선거에 <구로구을> 후보자로 출마했을 때, 당시 최명길은 둘째를 출산하고 보름밖에 되지 않아 산후조리 중이었음에도 유세현장에 나갔습니다.
최명길은 부기가 덜 빠진 얼굴과 몸에도 불구하고 경로당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구로댁으로 불러주세요’라며 적극적인 유세에 나섰고, 오히려 주민들이 “산후조리 잘못하면 평생 고생인데, 찍어줄 테니까 어서 집에 들어가 쉬어라”며 선거 운동을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한길의 성적은 낙선이었습니다.
용돈으로 드라마 계약금 건네는 아내
그렇게 기가 죽은 남편에게 최명길은 ‘이 정도 일로 기죽지 말고, 제일 좋은 차 차고 제일 멋있게 입고 다녀라’라면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 봉투 속에는 무려 드라마 <명성황후> 계약금 전액이 들어있었습니다.
사실 최명길은 남편의 정치를 말렸었는데, 그럼에도 정치를 고집하는 남편에게 ‘대신, 당신이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되니, 정치한다고 갖고 나가지는 마라 ‘라고 약속을 받았었는데,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며 잘 나갔던 최명길은 남편에게 때때로 불만 없이 용돈을 챙겨주는 아내라고 합니다.
오직 최명길만 할 수 있는 ‘명성황후 유세’
2004년 제17대 총선 때는 드라마 명성황후에 출연했던 최명길이 명성황후 복장을 입고 거리 유세에 나서면서 김한길이 서울지역 열린우리당 후보 중 최다득표율로 당선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습니다.
2012년에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재킷, 노란색 운동화, 노란색 매니큐어로, 민주당이 파란색으로 당색을 바꾼 후에는, 파란색 패션을 강조하는 깔맞춤 내조로 유명했습니다.
2013년 김한길이 장외투쟁 중 환갑을 맞았을 때는, 직접 천막으로 미역국을 가져다주기도 내조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폐암 투병 김한길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김한길은 폐암 4기 선고를 받고 중환자실에 한 달을 입원해야했습니다. 당시 아내 최명길은 간병인 없이 홀로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겨우 퇴원했지만 겨우 걸음마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고 입맛도 잃어버린 남편을 위해 최명길은 단골 냉면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쟁반째 냉면을 가져와 차 안에서 남편에게 냉면을 떠먹여 주는 등 아이를 기르듯 남편을 지극 정성 병간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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