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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시크릿

변중석 일대기 - 현대 정주영 부인, 정몽준 어머니

by 별빛아침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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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중석여사와 정주영회장-서울 청운동 자택

변중석 여사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의 배우자입니다. 쌀 배달원이었던 정주영에게 시집와 남편이 불굴의 개척 정신으로 현대 그룹을 굴지의 기업에 올려놓기까지 묵묵히 조용한 내조를 해왔습니다. 변중석 여사의 결혼생활, 보살 내조, 검소한 사모님의 일화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동반자가 되다.

변중석 여사는 농사꾼의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1920년대로, 변중석은 계집애라는 이유로 보통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해 서당과 교회 야학을 통해 한문과 언문 깨우쳤습니다. 한동네에 사는 정주영 회장의 넷째 숙부가 성품이 곱고 후덕한 변중석을 눈여겨보았다가 조카 정주영이 결혼적령기에 이르자 맞선을 주선했습니다.

변중석 정주영 젊은 시절

1935년 변중석의 집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 서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혼식 때에야 신랑의 얼굴을 제대로 본 변중석은 “무슨 사람이 이렇게 크고 무섭게 생겼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 달 보름 뒤 식을 올렸는데, 쌀 배달을 하며 제법 돈을 만지던 정주영은 동네 사람들에게 메밀국수를 푸짐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정주영 회장이 21세, 변중석이 15세였습니다.

  • 정주영 회장의 두 번째 부인 변중석 : 정주영 회장은 8남매의 장남이었던 만큼 변중석은 시집갔을 당시 어린 시동생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막내 시동생은 세 살이고, 다섯 살짝 사내아이도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시할머니가 “몽필아, 엄마라고 그래라.”하더랍니다. 나중에 시할머니가 몽필이를 잘 가르치라며 주영이가 전에 한번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설명을 해줬습니다.

보살 아내로 살아온 70년 결혼생활

정주영과 변중석의 신혼살림은 산동네 판잣집 문간방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정주영은 무교동에서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했는데, 당시 직원들의 밥을 변중석이 모두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늘 펑퍼짐한 치마나 몸빼 바지를 즐겨 입었고, 자가용 대신 용달차를 이용한 그녀의 모습은 인심 좋은 식당 아주머니나 다름없었습니다.

특히 된장찌개 솜씨가 빼어났던 변중석은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는 직원들 때문에 덕소에 메주 공장을 직접 차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기 시작된 변중석의 보살 내조는 정주영의 자수성가에 큰 힘으로 작용했고, 결국 현대그룹 회장 사모님이 된 것이지요.

평생 변중석은 남편에 대해 “남편은 손님과 같다.”, “한강에서 보트 노질도 못하던 양반이 조선소를 세웠소!”라고 말할 만큼 늘 조용한 내조를 했습니다. 그런 부인에게 정주영 회장은 평생을 감사했는데, 임원들과의 자리가 있을 때마다 먼저 부인에게 절을 하고, 임원 모두 절을 함께 하도록 하기도 해서 부인 기 살리기를 보여줬습니다.

변중석 여사와 정주영 회장

너무나 검소한 현대가 사모님

평생 검소한 회장님이었던 정주영 회장과 마찬가지로 변중석 여사 또한 평생 재물에 욕심이 없었습니다. '재봉틀 하나와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고 말하며 손수 바느질한 한복을 자식, 며느리들에게 만들어줬습니다. 자식들 옷을 손수 만들어줬으며, 자신도 시집오는 날 빼고는 화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수수한 차림새와 겸손한 성격 때문에 그가 자주 들렀던 슈퍼 종업원들도 그가 현대가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어느 해 정초에는 복조리 장사가 조리 값을 받으러 왔다가 변 여사를 보고 “사모님 안 계시느냐”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변중석 여사와 여덟 며느리

8남 1녀의 자녀를 낳았기에 여덟 며느리들을 가르치는 것도 변중석 여사의 몫이었는데, 며느리를 맞을 때마다 선물로 저금통장을 주었습니다. 통장에는 자신이 생활을 해나가면서 푼돈이 생길 때마다 한 푼 두 푼 모아 둔 돈이 들어있었으며, 며느리들에게 검소한 생활 태도를 몸소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섭거나 엄격한 시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시골 아낙네 같은 넉넉함으로 며느리들을 감싸고 웃어른으로 대접받으려고 하지 않고 따뜻한 정으로 내리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엄마 변중석을 살갑게 챙긴 아들 정몽준 

여섯째 아들 정몽준은 변중석의 소생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형제들 사이에서 종종 소외를 당했는데, 변중석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몽준을 감싸고 챙겨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친자식보다도 더 정몽준을 살갑게 대해주었고, 정몽준 역시 변중석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 중인 어머니를 보기 위해 가장 많이 병실을 찾는 아들이었고, 누구보다 극진히 어머니를 간호했습니다.  

1990년 협심증이 발병해 오랜 투병 생활을 한 변중석 여사는 2001년 남편과 사별한 후, 2007년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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