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여사는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며느리이자 부동의 재계 1순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내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또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호텔신라 이부진사장, 제일모직 이서현사장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홍라희 여사의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의 삶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참 많은데요. 끝까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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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사모님 자산 랭킹 1위
한국 여성 주식 부호 1위는 홍라희 여사로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의 지분을 포함한 주식 평가액은 자그마치 7조 3,963억 원입니다. 2위, 3위 역시 그녀의 두 딸 이부진 사장(6조 334억 원)과 이서현 이사장(5조 3,669억 원)입니다.
홍라희 여사는 미술계 큰손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한남동 자택은 작은 미술관이라고 할 만큼 명작들이 걸려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침실에는 심산 노수현의 동양화와 르노와르, 피카소 작품이, 홍라희의 안방에는 운미 민영익의 난초, 시아버지의 가화만사성 글씨 작품이 있으며 응접실에는 샤갈의 100호짜리 괴슈 작품과 브라크, 피카소의 작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홍라희 여사는 개인소장 미술작품 1만 1000여 점과 고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기관에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최고의 명문가 규수가 삼성의 안주인이 되기까지
홍라희의 친정아버지 홍진기는 판사를 거쳐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전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홍진기가 전주에서 판사 재직 당시 장녀로 태어난 홍라희 여사는 경기 여중고, 서울대 응용미술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 홍진기를 비롯해 네 남동생 모두 서울대 출신이며 아들 이재용도 서울대를 졸업해 2003년 홍라희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스물둘, 서울대 재학 중일 당시 홍라희는 아버지의 권유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국전 관람 안내를 맡았습니다. 이때 홍라희를 눈여겨본 이병철 회장은 셋째 아들 이건희의 짝으로 그녀를 낙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일본에서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의 선과 상견례까지 착착 진행됐습니다.
당시 신부의 키가 너무 크지 않냐는 어머니의 우려가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2세를 위해 큰 여자가 괜찮지 않습니까?”라며 신부를 두둔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두 사람은 9개월의 연애 후 1967년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미술에 대한 안목을 길러준 시아버지 이병철
홍라희가 삼성가 며느리가 되고 얼마 후, 이병철 회장은 며느리에게 매일 10만원 한도에서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당시 시아버지의 심중을 짐작할 길 없던 그녀는 그저 묵묵히 민화나 토기, 자기 같은 소품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0만원은 큰돈이었지만 골동품 등을 사기엔 부족한 돈이었고, 그래도 재주껏 이것저것 샀는데 석 달쯤 지나자 집안은 온통 잡동사니 천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이병철 회장은 “이제 됐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병철은 며느리의 미술품 보는 안목을 테스트해 본 한편, 미술품 사는 요령 등을 훈련시켰고, 그 결과 홍라희는 삼성의 미술 사업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삼성의 미술관 설립 및 재단 체계가 자리 잡게 된 것은 홍라희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입니다.
밀착 내조로 남편 곁을 지킨 홍라희
홍라희 여사는 이건희 회장의 주요 행사 때마다 동반하며 그림자 내조를 했습니다. 해외 일정 때는 옆에서 손을 꼭 잡고 다니다가 기자들을 만나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이토록 밀착 내조를 한 이유는 남편의 건강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1999년 이건희 회장에게 폐암이 발견된 후, 수차례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 행을 겪었는데요. 때문에 매년 겨울에는 남편을 모시고 기온이 따뜻한 지역으로 출국해 요양했습니다.
극진한 내조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은 2014년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020년 별세하기까지 삼성서울병원 VIP 신세를 져야 했는데요. 언제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한남동 자택에 의료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 이건희 회장의 환갑을 기념하는 책자를 발행: 2002년 1월 이건희 회장의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당시 홍라희 여사를 비롯해 아들, 며느리, 사위가 직접 쓴 편지를 필름으로 떠 책을 만들었는데요. ‘가족’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오직 이건희 회장을 위해 단 한 권만 찍은 세상 유일한 책자로 남편을 감동시켰습니다. 당시 홍라희 여사는 1999년 미국 투병 생활을 떠올리며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당신이 고통스러운 표정 한번 짓지 않고 흔들리지 않은 모습에 감격스럽기만 했다”며 “그처럼 힘든 데도 오히려 가족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대범함에 눈물이 쏟아졌다”는 대목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엄마 홍라희의 자식 교육법은 원칙대로!
이건희, 홍라희 부부의 자식 교육법의 첫째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홍라희는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우기 보다는 오히려 엄격할 정도로 원칙대로 철두철미하게 키웠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녀들의 학창 시절에 직접 뺨을 비빌 정도로 스킨십이 많은 아빠였는데,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안쓰러워하며 ‘굳이 서울대에 가야 하느냐’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탁구를 치거나 농구를 했습니다.
반면 평범한 엄마들처럼 잔소리도 많이 했던 홍라희는 남매들이 모두 아버지를 더 좋아해서 가끔 외로웠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장남 이재용은 홍라희로부터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미국 유학 시절에도 기숙사에서 숙식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튀지 않고 평범한 학생과 다름없이 생활했습니다.
그를 만나 본 사람들 대부분 호감을 표시할 저도로 예의바르고 겸손한 청년으로 자랐다고 평가하는데요. 이는 홍라희가 삼성의 후계자로 커갈 재목으로 아들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키웠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딸들에게 늘 그러셨어요. 여성은 여성적일 때가 가장 강하다고. 여성이란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임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여자니깐 약하게 수동적으로 살라는 말과는 의미가 다르죠. 어머니가 남편 내조 자녀교육 열심히 하면서도 미술관 운영을 규모 있게 잘 해내셨듯이 저희도 열심히 살 생각이에요 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이부진 인터뷰 중)
- 리틀 홍라희는 둘째딸 이서현 : 미술적인 재능으로 놓고 본다면 자녀들 가운데 둘째 딸 이서현이 어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홍라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 박물관 나들이를 즐겼습니다. 그 덕분에 삼성가 3세들은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데요. 특히 이서현은 미술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는 등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서울계고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뉴욕파슨 칼리지에서 디자인을 배웠습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을 역임한 후, 현재는 어머니 뒤를 이어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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